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4 후퇴 (문단 편집) === 멸망 직전에 몰린 북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nchon_sangryuk_3.jpg|width=100%]]}}}|| [* 이 지도는 한 가지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청진을 수복할 당시 초산은 이미 중공군에게 다시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리던 [[북한군]]은 삽시간에 거의 모든 [[북한]] 지역을 내주게 되었다. 북한 임시정부는 [[압록강]]변에 있는 [[임시수도]] [[강계시]]에 틀어박혔고, 지도부는 자녀를 중국으로 망명시켜야 했다. [[한국군]]은 [[평양시]]를 함락하고 압록강에 도달했으며, [[미군]]은 [[장진호]]에 집결하여 북한의 임시수도 강계를 향한 마지막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단시간에 [[대한민국|남한]] 지역을 공산권의 영향하에 둘 셈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거꾸로 자신들이 완전히 망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대부분의 병력을 상실하고, 인구밀집지역을 모조리 국제연합군과 국군에 점령당해 병력을 더 모을 영토조차 남지 않은 북한은 자력으로 점령지를 방어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1951년부터 인민군 장교들을 만주 조선족 농촌지역으로 보내 인민군을 모집할 정도였고, 남은 병력은 영원 이북에 1개사단, 숙천에 1개 사단, 박천에 1개 전차 여단, 장진 부근에 1개 공병연대와 전차연대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이 궤멸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으며, 이미 임시사령부를 만주에 꾸려놨고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